2020. 12. 4. 01:08ㆍ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20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집이나 건축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것은 공간감과 형태, 즉 시각으로 구성되는 이미지다. 하지만 우리는 집을 늘 만지고 느낀다. 눈뿐 아니라 손과 발, 코로도 우리는 공간을 기억한다.
손에 만져지는 집
공간을 인지하는 절대적인 감각은 시각이다. 시각으로 인지되는 것은 색상이나 빛의 명암이지만, 우리는 재료에 따른 질감도 함께 인지하고 느낀다. 이는 우리에게 축적된 촉감의 경험 덕분이다.
공간을 느끼는 감각
눈으로 인지하는 시각적 체험을 우리는 매우 신뢰한다. 하지만 눈만큼 속이기 쉬운 감각기관도 없다. ‘눈의 착각’을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사례들은 우리 눈이 얼마나 틀리기 쉬운지 알려준다. 우리 모든 감각이 대체로 그렇지만 특히 눈은 사물을 상대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길이와 색뿐 아니라 재질까지도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손은 조금 다르다. 거칠고 매끈한 질감의 차이, 차갑고 따뜻한 온기의 차이를 느낀다. 만져보면 보이는 것과 달리 매끈하면서도 따뜻한 것도 있고, 거칠지만 차가운 것도 있다. 눈으로 인지하는 것은 전체의 크기와 형태이지만 손으로는 깊이와 재질뿐 아니라 내 몸과 대비한 상대적 크기와 형태도 알 수 있다. 인지 대상과의 거리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눈으로는 볼 수 있지만, 손으로 느끼려면 대상과 매우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공간을 느끼고 인식하는 데 있어서 촉감은 때로는 시각보다 중요하다.
매끈한 질감
깔끔하고 모던한 공간 디자인을 위해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매끈한 재료다. 매끈한 재료는 빛을 반사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사용면에서도 이물질을 쉽게 닦아낼 수 있고 수분에 강해 물을 사용하는 공간에 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매끄러운 만큼 온기를 품기 어렵기 때문에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재료의 종류에 따라 온기와 촉감은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건축 재료는 가공 방법에 따라 매끈하게 만들 수 있고 광택도 낼 수 있지만, 흔히 사용되는 매끈한 재료는 금속, 돌, 타일이다.
금속도 가공하기 전에는 거칠지만, 건축에서는 주로 가공하여 매끈하게 만들어 사용한다. 금속은 깔끔한 선을 만들어내고,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많이 사용될 경우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는 금속의 열전도율이 높아 쉽게 차가워진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택이 있는 금속 재질은 금속 그 자체의 질감을 많이 드러내 더욱더 차가워 보이기 때문에 반짝이는 느낌으로 포인트를 줄 때 사용한다. 주로 조명 등 장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공간의 선을 반듯하게 정리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줄이기 위해 집 안에서 난간 등에 사용되는 금속은 무광으로 도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만져보면 도장된 두께는 얇지만 도장된 금속이 광택이 있는 금속보다 덜 차갑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돌은 거칠지만 물갈기 등의 가공을 할 경우 매끈한 광택을 가진 재료로 변신할 수 있다. 돌은 쉽고 빠르게 데워지지 않아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쉽게 식지 않기 때문에 금속보다는 덜 차갑다. 매끈하고 깔끔하면서도 돌의 묵직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하지만, 너무 많은 면적에 사용할 경우 전체 공간이 차가워 보이기 때문에 포인트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타일은 주로 화장실과 주방 등 물을 사용하는 곳에 사용하는 재료로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거실이나 주방 등 공용공간의 바닥에도 많이 사용한다. 광택이 나는 폴리싱 타일은 관리가 용이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미끄러울 수 있고, 매끈하지만 광이 나지 않는 포세린 타일은 비교적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도 깔끔하고 모던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투박하고 거친 질감
건축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가공하기 전에는 투박하고 거칠다. 그래서 투박하고 거친 재료를 사용한 공간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너무 투박한 재료는 집에서 손이 자주 가는 곳에 사용하면 불편할 수 있지만, 적당히 거친 재료는 손에 닿을 때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건축에 사용되는 재료 중 가장 투박할 수 있는 재료는 돌이다. 매끈하게 가공하지 않은 돌은 거친 느낌을 주는 만큼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며 묵직하고 든든하다. 하지만 다른 재료와 달리 너무 거칠면서도 단단하여 안전상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고, 손이 닿았을 때는 차가워 그리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손이 닿는 곳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집에 사용되었을 때 가장 따뜻한 느낌을 주는 거친 재료는 목재다. 목재는 금속이나 돌과 달리 완전히 매끈해지기는 어려우며 쉽게 차가워지지도 쉽게 뜨거워지지도 않아 적당히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목재는 손이 닿는 곳에 사용하기 매우 좋은 재료다. 모던하고 깔끔한 느낌을 위해 금속으로 난간을 만들더라도 손스침을 목재로 만들거나, 문손잡이, 창턱 등 손이 많이 닿는 곳에 목재를 사용하면 조금 더 포근한 느낌의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심지어 목재를 가공하여 다른 느낌으로 만들거나 다른 재료에 목재 무늬를 입히더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목재의 촉감은 우리의 눈을 속여 공간을 따뜻하게 인식하게 한다.
부드러운 질감
부드러운 질감은 편평하지만 차갑거나 매끄럽지 않고, 차갑지만 투박하거나 거칠지 않는 질감으로, 종이와 패브릭, 가죽 등의 질감이 그러하다.
보통 집의 벽체는 콘크리트, 목재 등으로 세워지는데, 콘크리트 벽은 편평하게 마감되기가 어렵고 벽체를 구성하는 목재 역시 말끔하지 않기 때문에 합판과 석고보드 등을 이용해 내부 마감을 위한 벽면을 구성한다. 그 후 석고보드를 벽지 또는 페인트 도장으로 마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페인트 도장을 하면 부드럽지만, 페인트 자체의 질감보다는 하부의 재료, 즉 석고보드 위에 도장한 것인지 시멘트벽 위에 도장한 것인지에 따라 손으로 느껴지는 온기에 차이가 있다.
벽지는 페인트에 비해 그 자체의 도톰한 질감이 있고 벽 뒤의 냉기가 바로 느껴지지 않으므로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벽지는 흔히 합지벽지와 실크벽지로 나뉘는데, 실크벽지가 조금 더 힘이 있고 두툼하며 벽에 완전히 밀착시키지 않아 조금 더 따뜻한 촉감을 줄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벽지가 있어, 합지 벽지라도 질감을 주어 더 도톰하게 만들 수도 있고 실크벽지라도 더 매끈한 것도 있으므로 벽지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실물을 보고 만져본 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직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쿠션을 안는다. 패브릭은 그렇게 늘 따스하고 보드라운 것이기 때문에 공간 연출에 사용할 때 공간의 포근함을 극대화한다. 집이 좀 추워 보인다면 커튼이나 가구 등에 패브릭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또한 문이나 창문, 가구의 손잡이 등 손이 닿는 곳에 패브릭을 덧대면 손이 닿을 때마다 기분 좋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손으로 만지는 집
집의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대해 생각할 때, 시각보다 간과하기 쉬운 것이 촉감이다. 우리는 늘 집을 만진다. 따뜻하고, 깔끔하고, 부드러운 우리 손의 경험들은 우리의 생활을 조금 더 풍부하고 안정감 있게 해 준다. 가족이 원하는 따스한 집, 깨끗한 집, 포근한 집을 위해 손의 감각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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