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4. 01:07ㆍ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20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소소한 집 이야기]
멋지고 훌륭한 공간, 집의 구조와 재료도 모두 중요하지만, 집의 모든 부분은 사는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집의 작지만 작지 않은 부분들, 소소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매일 집을 나서고 돌아오는 공간인 현관은 늘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주로 머무는 곳이 아니다 보니 현관에 관심을 두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관은 매일 우리의 하루 시작과 마무리를 다독여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현관을 가진 집
현관은 한자로 '玄關'이라 쓴다. 오묘하고 신묘한 관계를 맺는 곳이라는 뜻으로, 안으로 들어왔지만 아직 집으로 들어오지는 않은 상태의 공간, 집에서 나서 문고리를 잡았지만 아직 밖으로 나가기 전의 공간이다.
입식 생활을 하고, 주거 내에서도 신발을 신는 서양의 집에서 현관은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손님의 경우 주인의 안내를 잠시 기다리는 공간이고, 보통 여기서 신발과 옷의 먼지를 털고 우산을 세워둔다. 굳이 말하자면 현관문의 영역에 가깝다.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관이라는 공간이 없이 바로 복도나 거실이 되기도 한다.
반면 좌식생활을 주로 했던 우리나라에서 현관은 뚜렷이 존재한다. 이제는 대부분 서양식 주택에 살지만, 우리는 여전히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 아무리 침대에서 자고, 의자에 앉아 밥을 먹더라도 여전히 거실을 마루라 부르고 거실 바닥에 둘러앉는 게 익숙한 우리에게 실내에서의 신발 착용은 용납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현관은 우리의 생활 방식과 새로운 형식의 주택이 만나 생긴 새로운 공간이다.
현관은 머무는 공간
우리의 현관은 기본적으로 신발을 신고 벗는 공간이다. 외부의 먼지와 흙, 습기를 내부로 들이지 않기 위해 실내 다른 공간과 5cm 정도의 단차를 둔다. 이 작은 단차로 인해 벽이 있든 없든 현관 공간은 다른 공간과 구분되고, 현관의 영역은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의 현관은 하나의 공간이다. 나갈 때는 신발을 골라 신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들어올 때는 신발을 벗고 우산을 정리하고 신발도 정리한다. 이 행위들이 있어 주인과 방문객 관계로 서로를 응대할 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현관에 비교적 오래 머문다. 머무는 시간만큼 이 공간의 느낌 역시 그저 집의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이라고만 말하기는 부족하다. 조금 더 많은 공간적 장치들이 있고, 그에 따른 공간감이 존재한다. 크기, 배치하는 물건들과 조명 등에 따라 현관의 공간감은 달라지고, 이는 집에 대한 감상을 다르게 불러일으킨다.
현관이라는 공간 만들기
현관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이 있으므로 현관의 크기는 꽤 중요하다. 집을 지을 때나 고칠 때 거실과 같은 실내 주요 공간들의 크기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현관은 최소한으로 만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다른 공간에 영향이 많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관은 커도 좋다. 집에 들어서는 첫 공간이므로 현관이 큰 집은 시원하고 넓은 느낌을 준다. 자전거나 유모차를 둘 수도 있고,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 있어 실용적이기도 하다.
현관에는 수납할 것이 생각보다 많다. 신발을 벗어 수납해야 하므로 현관에는 기본적으로 신발장이 존재한다. 보통 신발장은 늘 부족하기 때문에 벽 한 면을 꽉 채워 수납장을 만든다. 하지만 하부를 살짝 띄워 조명을 넣거나, 신발장의 가운데 문 없이 선반을 둔다거나 하는 것으로 그 답답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다. 보통은 쉽지 않겠지만,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현관 옆에 별도의 방으로 창고형 수납공간을 두어 우산이나 신발, 킥보드, 유모차 등을 수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공간은 외부와 가깝고 난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선선한 곳에서 보관해야 하는 마른 식자재 등도 보관하기 좋다. 창고를 두기 어려울 경우 수납장으로 최대한의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겠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면 현관 공간이 답답해지므로 다른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중문이라 하여 현관 공간과 실내 다른 공간들 사이에 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문이지만 답답함을 피하고 내부에서도 바라보이도록 대체로 유리문을 설치한다. 중문은 바깥의 바람과 위험을 막아야 하는 현관문에 비해 기능이 중요하지 않아 재질과 모양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인테리어를 할 때 중문의 디자인 역시 집의 인상을 좌우하는 매우 큰 요소이므로 전체 분위기와 맞게, 또는 포인트가 되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현관에는 보안과 안전을 위해 보통 센서 조명을 설치한다. 예전에는 센서 조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이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디자인 조명들이 있어 집 전체의 분위기와 현관의 분위기에 맞게 선택하여 설치할 수 있다. 추가로 신발장 아래에 간접등을 설치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간접등은 분위기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신발을 신고 벗을 때에도 조금은 도움이 된다. 선반이 있다면 선반에도 간접등을 설치할 수 있고, 포인트 벽등 같은 것을 설치해 보는 것도 괜찮다. 알고 보면 집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현관만큼 좋은 곳도 없다.
기본적인 것들 외에 현관에 두면 좋은 것으로 추천하는 한 가지는 벤치와 같은,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신발을 신고 벗을 때 앉을 수 있어 편리하고, 짐을 잠시 내려놓기도 좋다. 실용적인 측면 외에도 벤치는 공간을 따스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나 장식을 두어 이 집의 첫 공간을 계절에 따라 꾸밀 수도 있고, 뒤쪽 벽에도 그림을 걸거나 조명을 두어 감각적인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현관이 따스해지면 집은 따스해지고, 현관이 아름다워지면 집도 아름다워진다. 집에 들고 날 때마다 더욱 집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두꺼비집이 있는 분전함 등을 보이지 않게 붙박이 신발장 안쪽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법이 바뀌어 분전함을 반드시 보이게 설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신축 시에는 분전함이 설치되는 곳에 신발장을 설치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납장을 일부 파내고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이 법으로 여유가 생긴 현관 벽에 예쁜 벤치를 두는 것을 권해본다.
집을 들고 나는 길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현관에서 대문까지의 길 역시 집을 들고 나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 길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지만, 마당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현관에 들어섰을 때야 비로소 느껴지는 편안함이 차례로 우리 마음에 와닿는 것은 우리 생활을 든든하게 한다. 돌, 벽돌 등을 깔거나 식재를 달리하여 이 짧은 길을 걷기에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면 집을 떠나는 길에 조금 더 힘을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길이 조금 더 포근할 수 있다.
작지만 큰 공간, 현관
현관은 일터로 나가는 우리를 북돋아 주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는 우리를 다독여준다. 설레는 만남의 순간을 보듬어주고, 아쉬운 이별의 순간도 지켜본다. 그저 급히 지나가는 공간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정성을 기울여 꾸며본다면 이 작은 공간이 주는 생활의 변화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진정 따뜻하고 좋은 집은 작은 마음들과 정성들이 모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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