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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집 이야기] 시선이 마주치고 흘러가는 집

2021. 2. 17. 16:51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20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2020년이다. 때로는 머물러 있고, 때로는 움직이고, 때로는 일도 하는 공간. 집에 대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집의 어디에 머물든 내가 무엇을 할 때 어떤 것을 바라보느냐,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공간에 대한 감각과 감상은 달라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의 기억도 달라진다.

 

 

들어서기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 무엇을 마주하게 되느냐에 따라 집에 들어섰을 때의 감상은 달라진다.

 

현관에서 동선이 흩어지거나 꺾이는 경우 벽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마주하게 되는 벽은 다시 나를 밀어내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벽을 이용해 우리 집과 우리 가족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가족사진이나 그림을 걸거나, 가족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 식물 등을 두거나 그저 깨끗한 벽의 색으로도 집의 이미지를 들어서는 이에게 전달할 수 있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계단이 보이는 복층집도 있다. 1층과 2층 사용자가 다를 경우, 특히 2층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중히 여기는 경우 현관과 가까운 곳에 계단을 두는데, 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다. 계단은 그 자체로 역동적인 느낌이고, 이 집에는 보이는 것 외의 숨겨진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주어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반면 계단은 기능을 가진 장치이므로 숨겨지는 것이 더 깔끔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집을 지을 때는 기능과 더불어 어떤 인상을 줄 것인가에 따라 계단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

 

복도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펼쳐지는 경우도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끝에 밝은 창이 보이는 복도를 마주하게 되면 시선은 가까운 곳이 아니라 멀리 있는 밝음에 시선이 간다. 밝음을 마주하는 순간 이 집은 이미 밝은 집이 되고, 저 밝은 곳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 순간 복도는 이미 그리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고 목적지에 더 큰 관심이 생긴다.

 

들어서자마자 거실 등 넓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불투명하고 무거운 현관문을 열고, 다른 공간에 비해 비교적 좁고 어두운 현관을 상상하며 들어선 순간 예상치 못한 넓고 밝은 공간이 펼쳐진다면 다른 공간을 보지 않아도 이 집은 이미 넓고 밝은 집으로 인식될 수 있다. 반면 출입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서는 전이공간이 없이 바로 집으로 진입하게 되므로 조금은 불편하거나 당황스러울 수 있으며, 기능적으로도 진입공간과 공용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불편할 수도 있다.

 

 

가족간의 시선

 

거실과 복도, 주방과 식당은 대표적인 집의 공용공간이다. 이 공간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가족들의 시선은 만나거나 교차하거나 막히고, 그에 따라 가족들의 생활은 달라진다.

 

거실, 복도, 주방과 식당이 모두 한 공간에 있는 경우도 있다. 거실과 주방 및 식당이 집의 중심에 하나로 존재하고 다른 공간들이 그 주변으로 붙어있는 형식이다. 이 경우 다른 가족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개인공간 뿐이다. 밥을 먹든 TV를 보든 운동을 하든, 공용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다른 가족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방식이지만, 공용공간을 통해 이동하게 되므로 복도에 따로 면적을 할애하지 않아 경제적이어서 일반적으로 작은 규모의 아파트가 이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공간에 좀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주방, 식당 공간과 거실을 완전히 분리하기도 한다. 그러면 공용공간의 사용방식에 따라서 가족끼리 시선이 완전히 분리된다. 최근에는 대면형 주방을 설치해 거실과 주방이 서로 소통하고, 가족들이 공용공간에서 늘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는 추세이지만, 그래도 손님이 많은 집이나 가족 구성원이 많은 경우 완전히 분리된 거실과 주방은 오히려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집의 규모와 관계없이 조금의 여유로도 주방, 식당과 거실을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다. 각각의 영역을 설정하고 이 영역들을 살짝 꺾어 배치하면 각 공간에서는 다른 공간의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취향에 따라 주방의 살림이나 요리를 하는 모습이 거실에 완전히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 이 방식이 적합하다. 분리되어 있어 보이기 싫은 것은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거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아 가족들과의 소통은 가능하다. 이렇게 시선을 살짝 어긋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가족들과의 소통 방식과 소통의 빈도, 시간은 확연히 달라진다.

 

단순히 개인공간과 공동공간만으로 집을 구분할 수는 없다. 복도 중에서도 주로 개인이 이동하는 공간이 있고, 옆에 방들이 있어 다른 가족의 개인공간을 침범하는 공간이 있다. 위치에 따라, 주변 공간들과의 관계에 따라 어떤 시선을 열고 막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지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창을 두어 시선을 돌리거나, 벽이나 시선을 살짝 막을 높이의 가구로 시선을 막거나, 일부는 열어 답답하지 않도록 해주는 등 고민의 결과에 따라 다양한 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

 

 

바라봄

 

가족 간의 시선이 어떻게 만나고 지나치는지도 중요하지만, 복도공간이나 계단 등 집에서 이동하는 공간에서 머물거나 지나치는 시선, 책상이나 거실 소파에서의 시야, 심지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때나 욕조에 앉았을 때 어떤 것이 보이는지에 따라서도 우리의 생활은 달라진다.

 

복도 옆에 전망이 가능한 창이 있는 경우 복도는 이동을 위한 공간 이상의 가치를 가진 공간이 된다. 빛과 풍경이 함께하는 이동공간은 공간과 공간 사이를 다닐 때 분위기와 느낌을 환기시켜 집에 머무는 공간을 조금 더 즐겁게 해 준다. 복도 양쪽으로 벽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공간으로 가는 길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며, 복도의 끝에 창이 있는 경우 이동하는 내내 바라보이는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의 변화가 느껴져 발걸음을 조금 더 가볍게 한다.

 

TV를 보는 거실이나,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서재에서는 주로 창을 옆에 둔다. 앞쪽에는 활동을 위한 장치가 위치해 있어 생각보다 정면의 창은 잘 보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문득 고개 돌려 바라보이는 풍경이나 피부로 느껴지는 햇살은 잠깐의 휴식을 주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힘을 쏟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옆에 두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책상이나 가구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앞에 두는 것도 뒤에 두는 것도 모두 답이 될 수 있다.

 

 

편안하고 즐거운 집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설거지를 할 때와 가족들이 머무는 거실을 바라보며 설거지를 하는 것은 다른 감상을 준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보이는 풍경이나 나를 깨우는 햇살은 매일 달라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준다. 욕조에서 전망이나 하늘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다면 매일이 즐겁고 여유로울 수 있다.

 

 

창을 통한 풍경이 없어도, 필요한 만큼 시선을 막고 열면 개인 공간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함께 하는 공간은 더욱 즐거워진다. 점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 어떤 공간과 삶의 방식이 나와 가족을 더 즐겁게 하는지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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