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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집 이야기] 바람과 하늘, 땅을 만나는 집

2020. 12. 4. 00:05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18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계절, 5월이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고, 화단에 심어둔 꽃은 만개했고, 이른 봄 텃밭에 심어둔 채소들도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저녁나절 온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단독주택에 사는 이유, 마당

 

귀촌을 하든, 도심에 살든, 단독주택에 살기로 결심하는 이유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우리 가족만의 마당이다. 하지만 정작 마당에 대해 깊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신축을 위한 첫 만남을 할 때, 방의 크기와 개수, 거실과 주방, 수납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마당에 대해서는 그저 바비큐와 텃밭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집의 외부 공간은 그저 집을 짓고 남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집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활동들을 하는 공간이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공간이며, 당연히 많은 고려를 해야 하는 공간이다.

 

 

마당과 멀어진 우리

 

예전 우리 전통 주거에서는 마당의 개수가 곧 집의 크기를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사랑채는 사랑 마당, 안채는 안마당, 심지어 행랑채까지도 행랑 마당을 갖고 있었으니, 마당의 개수는 곧 집을 이루는 채의 개수였고 집의 규모였다. 우리네 집에서 마당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집을 이루는 중요한 한 요소였다. 전통 주택에서 집의 방문이 모두 밖으로 열리고 대문은 안으로 열리는 것은 집의 모든 공간이 중심공간을 마당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마당은 각기 다른 이용자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사랑마당은 남자 주인이 손님을 영접하기도 하고 혼례 등 큰 행사가 치러지는 장소였다면, 안마당은 집의 여성 주인이 집을 꾸려가는 가사노동의 장소였다.

 

사전적 의미로도 마당은 집 앞이나 뒤의 편평한 땅이라는 의미와 함께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마당이 그저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에는 모자람이 있다.

 

단독주택을 지으려 하는 사람들조차 마당을 그저 비워진, 다용도의 장소로만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가 그사이 마당과 멀어진 삶에 익숙해진 탓이 크다. 도심에서 땅은 한 평 한 평이 매우 큰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어 밀도 높은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50% 가까이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빌라에 살아도 마당 한 떼기 없기는 매한가지다. 서울 도심의 단독주택 역시 마당이 10평도 되지 않는 집이 90%를 넘는다고 하니,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마당 생활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 게다.

 

 

외부 공간의 다양한 쓰임

 

앞서 집의 외부 공간을 통틀어 마당이라 칭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외부 공간들이 존재한다. 무언가 활동을 하는 마당, 실내공간에서 바로 연결된 테라스, 꽃이나 작물을 가꾸는 뜰과 텃밭 외에도 수돗가와 주차장, 툇마루, 장독대 등이 있다. 이 공간들은 성격에 따라 공간의 형태도, 위치도 달라진다. 집을 짓거나 고칠 경우, 이러한 다양한 외부 공간에 대해 이해하고, 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가에 따라 마당에 대한 계획도 함께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 지을 땅을 결정하고 난 뒤 많은 이들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꿈꾸며 큰 잔디 마당 한 쪽에 위치한 집을 상상하고 건축가를 찾는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마당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를 먼저 물어보고, 각기 활동에 따라 다양한 외부 공간들을 만들기 위한 적절한 집의 위치를 제안한다.

 

 

외부 공간의 다양한 성격과 구성

 

잔디 깔린 큰 앞마당은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여도 실상은 쓸모가 없다. 남향집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 앞마당은 여름엔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겨울엔 어차피 추워서 나가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길과 붙어있는 경우가 많아 프라이버시도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요즘 많은 신도시에서는 담장을 만들 수 없도록 하고 있어 앞마당에서 가족들이 뭔가를 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오히려 가족들이 모임을 하고 마음껏 외부 활동을 하기에 뒷마당이나 중정이 적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앞마당을 너무 줄이게 되면 길에서 집의 내부가 보일 수 있으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다만 뒷마당이 북쪽에 위치할 경우, 충분한 너비를 확보하지 못하면 집으로 인해 그늘이 지므로 습도가 높아지고 겨울에는 눈도 잘 녹지 않는다. 또한 같은 이유로 잔디를 심거나 텃밭을 가꾸기도 쉽지 않으므로 그럴 경우 석재 데크나 타일 등 습기에 강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파트의 다용도실이나 베란다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외부 공간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수도를 설치한 외부 공간이 주방과 연결되어 위치한다면, 김장을 한다거나 실내에서 다듬기 어려운 음식들을 다듬기에도 좋다. 주로 뒷마당을 이 용도로도 사용하게 된다.

 

텃밭의 경우 주방과 가까운 것이 유리할 수 있겠으나 주택에서 주방은 주로 북쪽에 위치하게 되므로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집에서 너무 가까운 곳에 텃밭을 가꾸게 되면 벌레가 들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마당을 떠올렸을 때 잔디 마당과 함께 꼭 떠올리는 것이 목재 데크다. 목재든 타일이든 주택에 붙어있는 외부공간인 테라스 공간은 내부 공간의 성격이 그대로 확장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주로 휴식, 식사 등을 하게 되므로 거실이나 식당과 가까운 곳, 또는 전망이 좋은 곳에 만드는 것이 좋다. 다만 목재 데크의 경우 관리가 필요하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오일스테인을 발라줘야 목재가 상하지 않는다. 자주 깎아줘야 하는 잔디나 목재 데크는 단순히 로망으로만 선택할 일은 아니다.

 

지붕이 있는 외부 공간 역시 단독주택에서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신축 시에는 주로 필로티 공간을 만들어 확보한다. 실외에서 작업을 하거나, 음식 등을 건조할 때도 좋고, 각종 장비를 보관하기도 한다. 보조 주방을 설치하여 생선구이 등 냄새나는 음식을 하거나 마당에서 식사할 때 사용할 수도 있다. 바닥재는 목재, 자갈, , 시멘트나 아스콘 등 공간 성격에 따라 달리 선택이 가능하다.

 

주차장도 대부분의 경우 필요하다. 주택 신축 상담을 해 보면 많은 건축주가 서양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차고를 꿈꾸지만, 애석하게도 예산 문제로 뭔가를 포기하는 상황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지붕으로 차량을 보호하고 싶다면 필로티 하부를 주차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남는 땅 한 구석을 주차공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주차공간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실제 생활에서의 편의는 꽤 차이가 나므로 어떤 방식이 좋을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주택에서의 바깥 생활

 

단독주택 생활은 아파트 생활보다 품이 많이 들어간다. 집의 각종 설비가 말썽을 부릴 때도 직접 챙겨야 하고, 외장이 더러워지면 청소를 하거나 도장을 해줘야 한다. 가장 많은 관리가 필요한 곳이 어쩌면 외부 공간, 마당일 것이다. 잔디는 자주 깎아줘야 하고, 목재 데크도 관리해줘야 하고, 텃밭도 매일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무들이 말라 죽지는 않는지 벌레가 끼지는 않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가을에는 낙엽도 치워줘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는 이의 성품이 바로 드러나는 곳도 마당이다.

 

그럼에도 마당이 있어 우리는 날씨를 더욱 살피고, 햇볕을 감사히 여기고, 바람을 느끼고, 계절이 바뀜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마당에서 가능해야 한다. 우리 가족과 내가 꿈꾸는 삶의 방식에 따라, 거실만큼, 주방만큼 마당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풍부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