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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집 이야기] 옛집에 새 삶 담기

2020. 12. 3. 23:48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18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집을 고쳐 쓰는 것은 새로 짓는 것보다 어렵고,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 따라서 많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옛것을 새로 고쳐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와 삶을 담아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일이다.

 

 

슬금슬금 봄이 다가온다. 3월은 공사가 가장 많이 시작되는 달이다. 겨우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결과물을 현실로 만들기에 3월은 여러모로 좋다. 신축공사의 경우 3월에 시작하면 너무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골조 공사를 끝낼 수 있고, 한여름 비지땀을 덜 흘리려면 리모델링 공사도 봄에 시작해 끝내는 것이 좋다.

 

 

, 고쳐 쓸까, 새로 지을까

 

예전에는 너무 흔하거나 값싸다고 주목받지 못하던 적벽돌 집이나 시멘트벽돌로 지은 집들이 멋지게 고쳐져 카페나 식당이 되는 모습을 요즘 흔히 볼 수 있다. 옛것에서 향수를 느끼고, 지금은 불가능해진 예전 것들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보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주택을 고치고 싶다고 상담을 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을 고치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오래된 집의 경우 도면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도면이 있다 해도 오랜 세월 고치며 살다 보니 도면과 현장이 같은 경우가 거의 없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공사 중의 변수들로 공사비는 늘어나고, 기간도 늘어난다. 그간의 마음고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첫째로, 신축을 하면 면적이 줄어드는 경우다. 오래된 집은 예전의 법규에 맞추어 지어져 있지만, 관련법은 그사이 많이 바뀌었다. 주차장법도 많이 강화되었고, 대지 경계에서도 반드시 규정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신축 시 이전보다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째로, 신축이 불가능한 대지일 경우다. 건물이 지어져 있어도 도로에 접해있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신축이 불가능하다. 도시에서는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 신축이나 대수선이 불가해서 적당히 수선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예산이 부족하거나, 기존의 주택이 가진 매력을 살리고 싶은 경우다. 예산을 아끼려 할 때에는 공사 중 예산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매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길 수 있는 것과 남기고 싶은 것을 잘 구분해서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마음 맞는 건축가와 상담해 보는 것도 좋다. 집을 고치고, 그 장소가 갖고 있던 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는 그저 외면할 것은 아니다.

 

 

고려해야 할 것들

 

오래된 집의 경우, 구조가 불안한 경우가 많다. 리모델링을 결정하기 전 내력벽, 기둥, 바닥, 계단, 보와 지붕 등 주요 구조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안전진단을 미리 해 보거나, 건축가와 상담을 해 보는 것이 좋다.

 

조금만 고쳐서는 사용하기가 힘든 경우 법률상 대수선에 해당하는 수선을 해야 한다. 지붕이나 기둥, 내력벽 등을 일정 범위 이상 철거하거나 수선할 경우 이를 대수선으로 보는데, 신고나 허가를 받은 뒤 공사를 진행해야 하며, 인허가 비용뿐 아니라 인허가 기간으로 인한 공사 지연도 염두에 둬야 한다.

 

리모델링은 철거부터 시작하는데, 계획에 따라 일부만 철거를 진행해야 하므로 철거 공사도 섬세해야 하며 반드시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 철거 공사 외에도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변수가 워낙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항상 현장에 관심을 두어야 나중에 비용이 몇 배로 들거나 후회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난방, 상하수도, 가스 등 설비에 관한 것도 면밀히 살피고 공사를 계획해야 하며, 단열과 누수는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또한 최근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이 생기면서 지자체 등에서 노후주택 수리 시 지원을 해 주는 경우도 많으므로, 미리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 고친 이야기

 

필자는 재개발지역에 40년 정도 된 주택을 고쳐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월세로 있는 사무실이라 계약 전부터 집주인과 수리 비용에 대한 것들을 어느 정도 협의하고 공사를 계획했고, 공사 중 비용이 올라갔을 때도 협의 하에 진행했다. 대부분의 공사 과정을 직접 진행했고, 매우 저렴하게 공사를 했기 때문에 더욱 탈이 많았다.

 

처음 봤을 때 예전 다락과 주방이 있던 작은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천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천장이 없는 부분은 층고가 꽤 높았다. 천장을 철거하면 높은 층고의 공간이 나올 거라 예상했고, 그 때문에 집을 고쳐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머지 공간은 석고보드로 모든 공간이 마감되어 있었고, 벽 하나와 기둥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이 뚫려있어 그 하나의 벽만 조금 철거하면 공간 활용이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

 

공사 시작 전 이웃들에게 작은 간식들과 함께 인사를 했고, 철거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철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장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현장에 가보니, 석고보드를 철거한 상태의 집은 기가 막혔다. 기둥인 줄 알았던 것은 기둥이 아니었고, 시멘트 벽돌로 쌓은 벽들을 마구 자르고 남은 벽이었다. 철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눈에 보이는 불안은 사람들이 다급하게 지지대를 설치할 수밖에 없게 했고, 우리는 바로 금속 업체를 수소문했다. 구조 보강을 해야만 했고 철거하려던 벽은 손도 대지 못했다.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천장 철거를 끝내고, 지붕에 일곱 겹이나 쌓여있던 천막을 걷어내고 나니, 지붕 마감재는 시멘트 기와라 다 부스러져 있었고 지붕 곳곳의 합판들이 삭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지붕 내장 마감재와 외장재 모두를 수리하고 교체하는 공사도 추가되었다.

 

전기와 수도 공사도 완전히 새로 해야만 했고, 뚫린 외벽을 합판으로만 대충 막아둔 부분들도 여러 곳 있어 창과 문도 새로 만들어 끼워 넣어야 했다. 비용은 계속 올라갔다. 결국 바닥과 벽은 직접 미장과 칠을 했고, 도면에 글을 쓰거나 시공 감리만 해봤지, 기술도 없는 우리가 그리 잘할 리가 없으니 퍽 거칠고 어설프게 마감이 되었다.

 

 

새로 태어난 집에서 지낸다는 것

 

우리는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바닥 난방 등 많은 부분을 포기했고, 단열이나 방수도 완벽하지 않다. 창호도 교체할 수 없었고, 외부 공간도 많이 손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덕분에 조그마하지만 그래도 마당이 있는 사무실을 서울 시내에 갖게 되었다. 높은 층고를 가진 공간은 시원하면서도 아늑하고, 앞집 지붕보다 높이 창으로는 동네 고양이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거친 벽도 나름의 멋이 있고, 봄이 되면 마당에서 꽃도 허브도 잔뜩 키워낸다.

 

집을 고치는 건 쉽지 않고, 때로는 새로 짓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제약이 많아 마음대로 고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그리고 절대로 해야만 하는 본인의 이유가 분명하다면, 한 번 해봄 직한 일일 것이다.

 

새로 짓는 집이든, 고쳐 사는 집이든, 가족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낼 집을 늘 꿈꾸며 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