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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집 이야기] 숨어있는 작고 큰 공간

2020. 12. 4. 01:09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몇 달 동안 온 가족이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는 모든 장난감은 다 거실에 나와 있는 것 같다. 매 끼니 집에서 식사를 하니 널려 있는 식기도 주방 집기도 점점 많아진다. 자주 장을 보기 힘드니 식재료도 넣을 곳이 없다. 수납장을 하나 더 살까 싶다.

 

 

생활공간을 위한 숨은 공간

 

집에서 우리가 주로 생활을 하는 공간은 거실, 침실, 주방 등의 공간이다. 이 공간들은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이 공간들에만 모두가 관심을 둔다. 하지만 이 드러나 있는 공간들이 잘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잘 작동하는 숨겨진 공간들이 필요하다.

 

 

사계절의 나라, 미니멀은 어렵다.

 

수납공간은 대표적인 숨은 공간이다. 수납공간이 충분치 못하면 생활공간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여름엔 기온이 40도까지도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단적인 사계절을 가진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미니멀 라이프라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옷과 이불은 물론이고 커튼이나 가전제품까지도 계절마다 꺼내거나 넣어두어야 한다. 주 생활공간이 쾌적하려면 이 물건들에도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예전에는 방의 크기를 몇 자 장롱이 들어가는가를 척도로 가늠했지만, 요즘은 장롱보다는 붙박이장을 선호한다. 예전보다 이사의 빈도가 잦아지고 가구나 인테리어의 유행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전만큼 큰 가구에 큰 의미와 가치를 두지 않다 보니 견고한 고급가구들을 잘 들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붙박이장은 보기에 깔끔하다.

수납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짐은 옷이다. 우리 기후의 특성상 1년 내내 입을 수 있는 옷이 별로 없다 보니 옷도 신발도 많이 필요하다. 옷은 붙박이장에 수납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드레스룸을 두는 경우가 많다. 드레스룸이 없는 경우 작은 방 하나를 아예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방을 드레스룸으로 두면 공간은 넓지만 방 하나가 없어져 아쉬울 수 있으므로, 집을 계획할 경우 여건에 따라 온 가족을 위한 드레스룸을 크게 하나 둘 것인지, 방마다 붙박이장을 둘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문이 달린 붙박이장 외에도 최근에는 시스템 행거 등을 설치해 드레스룸 공간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 행거는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비교적 많은 옷을 수납할 수 있지만, 넓은 방에 설치해서 사용할 경우 옷이 상하기 쉽고, 정돈되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으므로 상황에 맞게 장단점을 고려하여 수납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한 계절마다 옷을 바꿔가며 따로 보관한다면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신발도 계절별로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고, 신발장은 아무리 크게 두어도 늘 부족하다. 이불도 계절별로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이 모든 짐은 부피도 보관법도 다르기 때문에 섬세하게 고민해 다양한 수납공간들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많을수록 좋은 수납공간

 

수납공간이 많을수록 생활공간은 깔끔해지고 쾌적해진다. 하지만 수납공간 역시 바닥면적에 포함되고, 공사비가 드는 공간이기 때문에 무조건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납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된다.

 

계단 하부에 공간을 만들어 수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계단은 통행을 위한 최소폭이 있으므로 계단의 옆면에서 계단 하부를 수납공간으로 사용하려면 너무 깊어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최대한의 공간 활용을 위해서는 설계 시부터 계단 하부의 양쪽에서 공간을 사용하도록 할 수도 있다.

 

다락은 법적으로 바닥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공간이므로 시공비는 들지만, 여러모로 유용한 공간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다락의 기준을 충족하려면 경사천장의 경우 평균 층고가 1.8m 이하여야 하고, 평천장의 경우 층고가 1.5m 이하여야 한다. 층고는 하부 슬라브 상부에서 상부 슬라브 상부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구조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천장고는 이보다 낮아진다. 경사천장의 경우 이 법적 기준이 되는 평균 층고를 넘기지 않아야 하므로 실제로 사용이 어려운 낮은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은 칸막이를 하거나 수납장을 짜 넣어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예전에 비해 한 번에 사는 식재료의 양이 많아지기도 했고, 우리 식문화의 특성상 오래 보관해야 하는 곡물이나 건어물들도 있기 때문에 식재료의 수납장소도 중요하다. 특히 식재료는 제대로 보관하지 않을 경우 상할 수도 있고, 수납이 안 되면 더욱 지저분해 보이거나 냄새가 날 수도 있어 보관 장소가 중요하다. 재료에 따라 바람이 잘 드는 장소, 빛이 들지 않는 장소 등 적정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식재료 수납공간이 있으면 좋다. 예전에는 주로 다용도실에 대부분을 보관했지만, 요즘에는 팬트리라 하여 주방, 현관과 가까운 곳에 별도의 보관 장소를 만들어두기도 한다. 면적을 차지하지만, 생각보다 매우 유용한 공간이다.

 

 

숨겨져 있어 유용한 공간

 

수납을 위한 공간 외에도 숨겨져 있어 유용한 공간들이 있다. 세탁을 위한 공간도 그중 하나다. 예전 아파트에서는 주로 주방에 딸린 발코니에 보일러와 세탁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건조기를 사용하는 집도 많지만, 빨래를 널어야 하는 경우 대체로 북쪽에 위치한 주방의 발코니에서 거실 발코니로 빨랫감을 가져와 너는 일은 불편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주방 발코니의 경우 세탁 외에도 다른 쓸모가 많기 때문에 세탁기를 두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아 최근에는 세탁실을 다양한 위치에 두기도 한다. 드레스룸 공간과 가까이 두어 세탁물을 수거하고 정리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기도 하고, 주택의 경우 아예 햇살이 잘 드는 공간에 선룸을 만들고 세탁기를 두어 햇볕에 빨래를 말릴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기도 한다. 공간이 부족할 경우 계단 하부에 세탁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도록 수납장을 짜 넣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세탁물을 보관하고 빨래를 돌리고 건조 후 정리하기에 쉽도록 가족의 생활 습관과 공간의 구성을 고려하여 세탁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

 

주방에 딸린 다용도실은 최근 아주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곳에 보조주방을 두면 생선을 굽거나 곰국을 끓이는 등 냄새나는 요리를 할 때 집 안으로 냄새가 덜 들어와 아주 유용하다. 바람이 통하는 것이 좋은 식재료들을 보관하기도 하고, 냉장고나 냉동고가 많을 경우 다용도실을 이용하여 주방을 보다 깔끔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수납공간 외에도 사용하기 좋은 위치에 적절한 창고를 만들어두면 가족들의 취미를 위한 캠핑장비, 마당과 차의 관리를 위한 장비들, 유모차와 자전거 등 밖에 두면 지저분한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숨어있는 작고 큰 공간

 

숨어있는 공간들이 잘 작동해야 좋은 집이다. 각각의 공간들은 그리 크지 않고 우리가 늘 생활하는 공간도 아니지만, 이 작은 공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사용되며, 생활에 아주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런 공간들이 더욱 잘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꼼꼼하게 많은 것을 고려해보고 찾아보아야 한다. 늘 보던 모습과 똑같이 만드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집을 짓거나 고칠 때,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녹여 구석구석 알차게 공간을 활용한다면, 맥시멀리스트도 미니멀리스트의 공간을 누리며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