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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집 이야기]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결과물

2020. 12. 4. 00:56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18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집을 데우는 방법, 난방]

 

오래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 불을 피워 어둠과 추위를 물리치고, 밤에 다가오는 짐승들도 막아냈을 것이다. 이후 집을 짓게 되었지만, 집 안에서 안전하게 불을 피우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웬만해선 침범키 어려운 튼튼한 집 안에서 보일러 버튼을 눌러 간단히 온기를 만들어낸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언제 그리 뜨거웠나 싶게 겨울이다. 사계절은 우리에게 풍부한 풍경과 먹거리를 주지만, 연교차가 60도에 육박하는 가혹한 환경에서 쾌적하게 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이제 난방의 계절이다.

 

 

추위를 피해 온기를 만들어내다.

 

동굴을 벗어난 사람들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벽과 지붕을 만들어 바람과 짐승들의 위협을 막아냈다. 하지만 초기 집의 재료는 대체로 나무였고, 불을 집 안으로 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중세 서구에서는 특별한 난방 설비가 없어 추위를 피하고자 개들과 함께 자거나, 돼지우리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더 쾌적한 생활을 위해서는 바깥의 추위를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기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서구에서는 벽난로가 개발되었고, 화로를 만들거나 아궁이를 놓는 등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돌의 역사가 길고 지금도 우리는 바닥을 뜨끈하게 데운다.

 

 

집 안에서 불을 피우다, 벽난로

 

아궁이를 벽에다 내고, 굴뚝은 벽 속으로 통하게 된 난로를 벽난로라 한다. 벽난로는 본래 난방보다는 조리를 위한 것이었다. 실내에 불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이었으나 많은 학자와 관계 기관들이 벽난로는 건강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경고했는데, 이는 실내로 들어오는 연기 때문이었다. 벽난로를 개발한 독일에서 훈제요리가 발전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연기가 얼마나 심했는지 연상할 수 있다. 연통 등 여러 장치를 통해 열효율을 높이고 연기를 빼내는 기술이 조금씩 발전하면서부터 벽난로는 더 널리 전파되었고, 점차 부의 상징이자 장식적인 건축요소가 되었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고 가스, 전기 등 새로운 원료의 등장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벽난로는 난방 수단에서 제외되기 시작했고 사라질 듯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르코르뷔지에 등 현대 건축가들을 통해 벽난로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집의 중심 공간인 거실에 본래 주거의 중심이었던 불을 가져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집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려 했다. 지금 우리가 벽난로에 가지고 있는 로망은 이와 맥락을 함께 한다.

 

최근에는 여러 안전장치가 고안되어 있고, 다양한 제품들이 있어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직접 불을 사용하므로 가까이에서 빠르게 몸을 데울 수 있고,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전체 공기를 데우는 데 오래 걸리고 효율이 높지 않으므로 벽난로만으로 난방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주지하고, 연도 주변부는 특히 유의하여 시공하여야 한다.

 

 

바닥을 데워 공간을 데우는 온돌

 

192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자연과학자 W.E.그리피스는 은자의 나라 한국이라는 저서에서 동북아시아 지방에 있는 주택에서는 일종의 화덕을 통해 감자를 굽듯 사람을 굽는다.”고 썼다. 이를 통해 바닥 난방이 서구에서 얼마나 낯선 방식이었는지 알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었을까.

 

우리나라 온돌보다는 조금 뒤의 시기였지만, 기원전 100년 정도 그리스인들은 하이포코스트라는 난방 방식을 발명했다. 공간 하부에 아궁이와 연결된 연도를 만들어 더운 공기를 지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그리스인들은 주로 공중목욕탕에서 온수를 데우는 용도로 이 방식을 사용했다. 이후 로마시대의 장원과 집터에서도 이 방식을 가끔 볼 수 있는데,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공중목욕탕도 사라지며 이 방식은 완전히 잊혀졌다. 서구에서는 19세기에 폼페이 유적을 발굴한 뒤에야 이 방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겨울이 우리만큼 혹독하지 않으니, 목욕탕의 유행이 사라진 후에는 그 필요가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형태의 구들(구운 돌)을 주거의 난방 장치로 사용하였다. 온돌은 삼국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가장 효과적인 주택 난방장치로 제주까지도 전파되었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우리 전통 주거공간은 뚜렷한 사계절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결과물이다. 한여름의 더위는 바닥으로부터 들려진 마루구조를, 한겨울의 추위는 방의 온돌구조를 발달시켰다. 특히 온돌방식은 열원이 주거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어 쾌적한 실내공간을 제공했고, 열을 저장할 수 있어 열효율이 비교적 높았다. 같은 열원을 이용하되 난방과 취사를 위한 공간을 구분했다는 점 역시 독특하다.

 

소개하고 싶은 색다른 구들도 있다. 하동 칠불사에 있는 아()자방 구들인데, 신라 효공왕 때 가야 출신 담공 선사가 길이 약 8m의 이중 온돌방을 축조하여 만든 방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서 보면 방의 모양이 높낮이를 달리하여 자 모양으로 보인다. 한 번에 일곱 짐이나 되는 나무를 한 번에 때고 나면 100일 동안 불길이 막히지 않고 높고 낮은 곳이 고루 따뜻했다고 한다. 방안 귀퉁이의 높은 곳은 스님들이 면벽 수행을 하는 좌선처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통로가 되거나 참선 틈틈이 경전을 읽는 행경처다. 1951년 소실 후 복원했으나 지금은 그리 오래 온기가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하니, 여전히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구들로 남겨져 있다.

 

1950년 이전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듯이 아궁이에 장작이나 짚 등을 연소시켜 온돌을 데웠고, 이후에는 정부에서 산림자원의 보호를 목적으로 아궁이와 연도를 개량해 연탄 방식을 보급했다. 지금과 같은 온수 파이프 매설방식은 연탄가스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1970년대 말 이후 널리 보급되었다.

 

 

지금 우리의 따뜻한 바닥

 

현재 우리 집들은 대부분 바닥 난방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주로 바닥 아래로 온수를 흘려보내는 온수파이프 난방방식을 선택하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전기 패널 방식과 같이 다른 방식도 겸하여 사용하고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파이프는 X-L 파이프인데, 바닥 구조체 위에 기포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와이어메쉬를 올리고 난 뒤 파이프를 놓는다. 이때 파이프는 달팽이 모양의 원을 그리며 놓아, 물길이 막혀 하자가 생기지 않고 공간 구석구석 빠지는 부분 없이 온기가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바닥 난방의 경우 바닥 마감재의 선택에도 유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재료는 온도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마감재 사이가 들뜨거나, 마감재 자체의 특성이 바뀌어버릴 수 있다. 마루 마감재가 가장 흔히 사용되는데, 비싸고 고급스러운 원목마루는 오히려 쉬이 뒤틀릴 수 있어 합판마루나 강마루가 나은 선택이다. 석재 마감은 차가운 느낌 때문에 잘 선택하지 않지만 데워질 때는 조금 시간이 걸려도 열을 비교적 오래 품고 있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데코타일은 조각내어 붙일 경우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틈이 꽤 많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고려하여 바닥마감재를 선택하는 것이 쾌적하고 따뜻한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이다.

 

 

겨울을 대비하는 자세

 

아직 월동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서둘러야 할 때다. 난방설비는 잘 작동되고 있는지, 창호나 문에 틈이 벌어진 곳은 없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한겨울 온수파이프에 누수라도 생기면 일이 커지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동파가 되지 않도록 외부의 수도관에 옷도 좀 입혀주고, 전원주택의 경우 눈이 쌓였다 녹았다 해도 물이 새지 않도록 지붕 관리도 해줘야 한다. 가을 내내 떨어진 낙엽이 혹 지붕의 우수 홈통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도 확인해야 한다.

 

40도에 육박했던 지난여름도 잘 견뎌낸 만큼, 영하 20도의 추위도 무사히 잘 견뎌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겨울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