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4. 01:07ㆍ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19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곧 시원한 바람이 불 테고,겨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뜨거운 열기와 혹독한 추위를 막아주는 지금 우리의 튼튼한 집들은, 콘크리트나 나무뿐 아니라 철이 있어 가능했다.
철과 집
철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친숙한 건축 재료지만, 건축 재료로 사용된 지 고작 백오십 년 정도 된 재료다. 우리가 흙이나 돌, 나무처럼 자연적인 재료로 여기는 재료에 비하면 매우 최첨단의 재료인 것이다.
건축재료로서 철의 등장
철은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었지만, 고대에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더 강한 청동을 더 선호했다. 또한 철의 가공에는 고온의 열이 필요하고, 소량 생산만 가능했기 때문에 생활 전반에 사용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석탄 사용으로 철의 대량 가공이 가능하게 된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다양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에는 주로 산업용 기계에 사용되었다. 이후 철이 구조물을 만드는 데 처음 사용된 것은 다리였다. 철의 높은 강도는 높은 곳에 넓은 스팬이 필요한 다리 건설에 매우 적합했다. 그러나 건축물에 있어서 철은 19세기 초반까지도 목재나 벽돌과 함께 사용되는 재료였고,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유리와 함께 새로운 건축 재료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유럽에서 19세기에 열렸던 세계 박람회는 세계의 산업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국제적인 무대였다. 건축기술과 재료의 발전 역시 박람회에서 중요한 이슈였으며, 19세기 중후반의 박람회는 철구조 발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1851년 런던 박람회에 설치되었던 팩스톤의 수정궁은 그 시작을 알리는 건축물이었다. 철과 유리로 만들어져 반짝이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조적구조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최초의 대규모 건축물을 경험했다. 오티스에 의해 승강기도 개발되었다. 발전된 철구조와 승강기의 결합은 에펠탑을 만들어냈다. 에펠탑은 19세기 후반이 ‘철의 시대’ 임을 선언하는 상징이었다.
철은 강하고, 기둥의 간격을 늘릴 수 있다. 유리는 가볍고, 빛을 통과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커튼월 건물들은 이 새로운 건축 재료들의 조합으로 등장한 것이고, 번쩍이는 커튼월 건물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풍경이다.
구조재로써의 철
집의 뼈대, 즉 힘을 받아 건물을 지지하는 것을 구조라 한다. 철은 철골구조방식과 철근 콘크리트 방식에 사용된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철을 콘크리트 안에 넣어 철과 콘크리트로 구조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철은 인장력에 견디는 힘이 강해 압축력에 강한 콘크리트와 서로 보완해주는 성격이 있다. 기후 변화와 습도에 약한 철을 콘크리트가 보호해주어 내구성도 높여주므로, 가장 널리 쓰는 구조 방식이다.
반면에 철골구조는 철만으로 구조체를 만드는 방식이다. 철로 된 기둥을 세우고 보를 건 뒤, 안팎을 외장재와 내장재로 마감한다. 가장 흔한 철골구조 건축물은 공장과 마천루다. 철의 높은 강도와 가벼운 무게는 100층이 넘는 높은 건물도 가능케 했고, 대부분의 고층 빌딩들은 철골구조로 지어진다. 공장에도 이 방식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높은 층고와 넓은 기둥 간격이 가능하고, 비교적 저렴하며, 공사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공장뿐 아니라 우리 주거공간 역시 철골구조로 만들 수 있고, 이 장점들은 그대로 적용된다. 벽체의 두께도 줄일 수 있고, 좀 더 정확하게 시공이 가능하며, 공사기간도 철근 콘크리트에 비해 훨씬 줄일 수 있다. 건식 시공이므로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지 않으며, 건축물을 철거할 때도 콘크리트 건물보다 용이하다. 내외장재는 어떤 것이든 다양하게 사용 가능하며, 겉으로 보기에 철골구조 건물임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철골구조 방식 역시 다른 구조방식들과 마찬가지로 단점이 있다. 철의 가장 큰 약점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방청 도장을 해주어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생길 수 있으므로, 구조체를 노출시킬 경우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철은 열에 의해 쉬이 변형되므로, 화재 시 오히려 목재보다 철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열전도율이 높아 목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기둥 사이에만 단열을 할 경우 단열에 취약할 수 있으며,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벽 사이나 바닥 사이에 빈 곳이 많으므로 울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들은 충분히 있고, 짧은 공사기간과 저렴한 공사비용, 튼튼하고 얇은 구조체로 만들어진, 경쾌하게 높고 넓은 집은 매력적이다. 철골구조 방식을 공장이나 창고를 짓는 방식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좀 아쉽다.
집의 여러 부분을 만들어내는 철과 금속
철은 당연히 구조체 외에도 집의 여러 부분에 사용된다. 사실 집의 내외부 마감재로는 철보다는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아연도강판 등이 더 많이 사용되는데, 철이 기후와 습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철 그 자체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분은 주로 외부 난간이다. 평철이나 각 파이프, 둥근 파이프 등으로 가공된 철을 주로 사용하여 난간을 만든다. 부분적으로 철판을 마감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순수한 철은 습기와 공기에 닿으면 바로 산화가 시작되고 녹이 슨다. 철의 강도를 약하게 하기도 하고, 건물의 다른 부분을 오염시킬 수도 있으므로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장을 해야 한다.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방청 도장을 하고 색을 입히는 도장을 하기도 하고, 불소수지 도장으로 산화를 방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도장이든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거나 도장면이 들뜰 수 있다. 도장면이 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도장을 하기 전 프라이머(재료와 도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바탕재료)를 꼼꼼하게 발라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구적이진 않으므로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주는 것이 좋다.
철은 튼튼하고, 다양한 가공이 가능하지만 이렇듯 환경에 약하기 때문에 집의 외부에는 철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을 쓰거나 비철금속, 가공된 철을 사용하기도 한다. 금속 자재 회사들은 다양한 색상과 질감의 금속 외장재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기술로 어떻게 얼마만큼의 내구성을 확보하였는지를 설명한다. 금속 재료 발전의 역사는 이제 더 이상 생산성이나 강도에 대한 것이 아닌, 산화 방지 기술 발전의 역사다.
집에서는 지붕재, 외장재, 창호, 난간 등에 쓰이는 금속이 가장 눈에 잘 보이지만 그 외에도 철은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참 많이도 쓰인다. 집의 어떤 부분에 사용되든, 그 내구성이 얼마나 담보될 것인가를 전문가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하고 약한 철
철의 강도는 우리가 집에 사용하는 그 어떤 자재보다도 크다. 높은 층고를 가능하게 하고, 강한 보와 기둥은 넓은 공간을 최소한의 부재로 만들어낸다.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기도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가공할 수도 있다.
화려한 빌딩들과 유리 건물들을 가능케 한 강한 철이지만, 적절한 관리와 후처리가 없으면 그 어떤 재료보다도 쉬이 망가지고 상한다. 붉고 거친 녹이 흘러내리는 철제 기둥과 철판들은 버려진 공장에서 가장 떠올리기 쉬운 이미지다. 우리 집에 고마운 재료이지만, 그 내구성은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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