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4. 01:06ㆍArticle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전원생활 2019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물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늘 우리 주변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확보하고,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다.
물을 찾아 터를 잡다.
인류는 일찍부터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생활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정착한 인류는 농경생활을 시작했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인류 문명 발상지는 모두 큰 강 유역이며, 삼국시대의 역사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의 역사였다.
물은 마시고, 씻고,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했으나 자연의 것이었므로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통제와 사용은 쉽지 않았다. 또한 물로 인해 홍수나 가뭄 등의 재해는 끊임이 없었고, 물의 안정적이고 편리한 사용은 늘 인류의 숙제였다.
집에 물을 가져오다.
집에서 물은 요리와 목욕, 세탁에 사용된다.
주방은 일찍부터 침실 등 생활공간에서 분리되어 있었으나 목욕공간은 달랐다. 계곡과 강에서 목욕을 하거나, 초기 중세 유럽에서는 공동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다. 계급이 높은 경우에는 침실 구석에 욕탕을 마련하고 목욕을 즐겼고, 물론 이는 물을 데워 식기 전에 침실까지 날라 욕탕을 데우는 하인들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상수도가 없었으니 물은 길어와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또는 집 안에 우물을 만들어 생활용수를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식 침실 전용 욕실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20년대 미국이었다. 유럽은 목욕을 쾌락으로 바라보던 청교도식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비교적 느렸고, 입식 샤워 역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입식 샤워 역시 불안히 여겨 초기에는 임신한 여성은 사용을 삼가도록 했을 정도였으나, 결국 이러한 목욕 공간, 침실 전용 욕실은 곧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그러나 집에서 수도를 사용하게 된 건 욕실이 별도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다.
산업시대 런던에서는 냄새나는 하수의 처리가 시급해 시의 하수구와 개별주택의 하수관을 연결하도록 했다. 이 하수는 템스 강으로 흘러들어갔고, 오염된 템스 강의 물은 런던 시민들의 생활용수로 사용되었다. 런던에는 대규모 콜레라가 네 번이나 발생했으며, 사람들은 꽤 오랜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수의 문제와 달리 하수의 문제는 즉각적인 것이어서 하수를 먼저 해결하려 한 것은 비단 런던에서 만의 일은 아니었다.
집에서 물을 이용하다.
이제 물을 집에서 사용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다. 수도는 주방, 욕실, 그리고 원하는 곳 어디든 설치할 수 있고,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바로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주방에 연결된 수도를 사용하여 바로 요리에 사용한다. 바로 마셔도 무방한 깨끗한 물이지만 요즘 대부분의 집에서는 정수기를 사용하거나 생수를 식수로 사용하므로, 주방의 싱크대는 주로 식자재의 세척과 설거지를 위해 사용된다. 그러므로 주방을 구성할 때는 냉장고, 싱크대, 조리대, 가열공간 순으로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 가사노동 중에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가장 길기 때문에, 최근에는 거실이나 주택 내 다른 공간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아일랜드 부분에 싱크대를 두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세탁을 하는 공간이 따로 없었지만, 지금은 세탁기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집에서 세탁기를 두는 다용도실이나 발코니에는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 동파가 되기 쉬우므로 동파방지 처리를 해 주는 것이 좋다. 덧붙여 세차나 정원 관리 등을 위해 외부 공간에 수도가 있는 경우에 동파 대비는 필수적이다.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내보내는 곳은 욕실이다. 물을 편리하게 사용하는 만큼, 방수를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공 시 바닥과 벽의 아랫부분에서 1.8미터 이상은 반드시 두 번 이상 방수처리를 해주어야 하고, 바닥의 구배도 잘 잡아줘야 한다. 최근에는 건식 욕실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샤워부스나 욕조 공간만 물을 주로 쓰고, 세면대와 변기 공간은 바닥에 난방을 하고 건식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습식공간과 건식공간을 구별하여 사용하므로 관리가 쉽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건식 공간에는 배수구를 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물청소를 할 수 없고 물이 많이 튀었을 때 오히려 관리가 어려울 수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이외에도 세면대만 욕실 바깥으로 빼내는 방식이나, 세면공간과 샤워공간, 변기를 모두 각각의 공간으로 분리하여 두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집에서 거실이나 주방이 매우 중요한 공간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화장실은 생활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화장실은 오롯이 개인의 공간이기 때문에, 집을 새로 짓거나 고쳐 만드는 경우 화장실을 가장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물을 막아내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는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정의했다. 이 기계가 오작동하는 가장 흔한 경우는 물로 인한 문제다. 상수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장애가 생기고, 누수가 생기면 집 전체를 뜯어고쳐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물은 집을 구성하고 있는 목재나 철, 콘크리트를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물이 관련된 시공은 기밀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물을 막아내기 위한 시공도 꼼꼼해야 한다.
실무를 처음 시작할 때 들은 말 중 하나가 WWW법칙이라는 것이었다. “Water will win.”이라는 뜻이었는데, 어떤 방법을 쓴다 해도 물을 완벽히 막아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건물을 지을 때는 비록 물이 어느 곳에 침투하거나 조금 새어 들어간다 해도 집에 치명상을 주지 않도록 물에 대한 방비를 겹겹이 하는 것이 원칙이다.
밖으로부터 오는 물을 1차적으로 막는 것은 지붕과 벽이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경사지붕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두루 사용된 것은 물을 흘려보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사지붕은 방수에 유리하고, 비교적 쓸모 있는 다락을 만들기에 좋지만, 옥상을 만들 수는 없다. 외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에서는 특히나 평지붕을 많이 사용하는데, 평지붕은 경사지붕에 비해 방수에 취약하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방수 시공을 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보수해주는 것이 좋다. 벽은 지붕처럼 비를 바로 맞는 부분은 아니지만 당연히 방수에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벽돌이나 시멘트처럼 물에 의해 변색되거나 낡기 쉬운 재료들에는 마감 시 발수처리 등을 해주어 물을 한 번 막아주는 것이 좋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 속의 물도 집이 막아내야 하는 중요한 대상이다. 땅 속에는 지하수도 흐르고, 땅 속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기초 하부에도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 방습층을 두지만, 지하를 만들 경우 방수는 더 튼튼히 해야 한다.지하의 벽과 바닥에서 들어오는 습기는 절대로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으므로, 이중벽으로 물길을 만들어 모이는 물을 잘 빼내야 한다.
이외에도 창이나 실내 벽 등에 생기는 결로는 시공 시 단열과 창호의 기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환기다. 미세먼지와 날씨 때문에 꺼려지더라도 적당한 환기는 거주 환경과 집의 내구성을 확보해준다.
물을 잘 사용하는 집
우리는 물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쓰고 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집에서 물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낄 때는 오히려 집이 오작동할 때다.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에서는 집이 잘 작동하게 하는 것에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잘 쓰고, 잘 버리고, 안정적으로 막아내는 집이 물을 잘 사용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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